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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원석연 기자] 빈스 카터가 은퇴를 발표했다.파워볼실시간

살아있는 전설인 카터가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카터는 25일(이하 한국시간) 팟캐스트 ‘더 링어’에 출연, “내 농구는 끝났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리그가 중단되자 은퇴를 암시하긴 했으나, 공식적으로 발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카터는 지난 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지명된 뒤 곧바로 토론토 랩터스로 트레이드 돼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첫해부터 센세이션한 활약을 펼치며 신인왕을 차지했으며, 2000년 열린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는 믿을 수 없는 윈드밀 덩크로 우승, ‘에어(air) 캐나다’라는 별명으로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NBA 정규시즌만 1,541경기를 뛴 그는 유니폼도 많이 모았다. 토론토를 시작으로 뉴저지 네츠, 올랜도 매직, 피닉스 선즈, 댈러스 매버릭스, 멤피스 그리즐리스, 새크라멘토 킹스 그리고 지금의 애틀랜타 호크스까지 8팀을 옮겨 다니며 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4번의 10년대(decade)를 소화했다.

너무나도 아쉬운 마무리. 그러나 카터는 “아쉽지만 괜찮다. 코로나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이건 내 커리어보다 더 중요하다”라며 작별을 고했다.

[점프볼=김지용 기자] 토론토 랩터스의 마크 가솔이 고향 스페인에서 3×3 프로팀을 창단했다.

FIBA(국제농구연맹)의 발표에 따르면 25일 토론토 랩터스의 마크 가솔이 본인이 소유한 농구 클럽 ‘지로나 바스켓’에 스페인 최초의 3×3 프로팀을 창단했다고 소식을 전했다.

2007년 NBA에 입성한 뒤 멤피스 그리즐리스와 토론토 랩터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마크 가솔은 형 파우 가솔과 함께 NBA를 대표하는 형제 선수로 잘 알려진 선수다.

2013년 올해의 수비수 선정, 2015년 All-NBA First Team에 발탁되는 등 NBA에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 온 마크 가솔은 2019년 FIBA 농구 월드컵과 NBA 파이널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파워볼실시간

NBA 데뷔 전 스페인 아카스바유 지로나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마크 가솔은 지로나 바스켓에 3×3 프로팀을 창단하며 본인이 선수 생활을 했던 지로나와의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마크 가솔이 창단한 3×3 프로팀 지로나 바스켓에는 스페인 3×3 국가대표인 나초 마틴, 알렉스 르로카, 사비 기라오, 세르지 피노, 세르히오 데 라 푸엔테, 하비 베가 등 스페인 최고의 선수들이 합류했고, 스페인 3×3 대표팀 감독인 하우메 코마스가 팀을 운영하게 된다.

지로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나초 마틴은 “팀의 주장으로서 이번 창단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 순간을 위해 오래 기다려왔는데 무척 기쁘다”고 창단 소감을 전했다.

“3×3는 5대5와 농구와 다른 매력이 있다. 팬들 역시 3×3의 색다른 매력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시작이다. 갈 길이 멀지만,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겠다. 우리의 목표는 FIBA 3×3 월드투어 진출이다.” 나초 마틴의 말이다.파워볼사이트

나초 마틴은 2015년 유러피언게임 3×3에서 은메달을 따냈었고, 지난해 FIBA 3×3 유럽컵 2019에선 준우승을 차지했던 실력자다.

NBA 최고 스타가 자국 3×3 발전을 위해 3×3 프로팀을 창단하며 코로나19로 우울한 소식만 전해지던 세계 3×3 무대에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전해지게 됐다. 팀을 창단한 마크 가솔 역시 본인의 SNS에 계속해서 3×3 팀 창단 소식을 전하며 기쁨을 표하고 있다.

한편, 지난 24일 2020 도쿄올림픽 3×3 농구 1차 예선을 2021년 5월26일부터 30일까지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개최하겠다고 발표한 FIBA는 현재 8월로 예정돼 있던 FIBA 3×3 월드투어 2020의 일정을 모두 백지화하며 코로나19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 3대3 농구는 도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 한국 3대3 농구 연맹[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코로나19로 연기된 2020 도쿄올림픽 3대3 농구 1차 예선이 2021년 5월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열린다.

국제농구연맹(FIBA)은 23일(이하 현지 시간) “3대3 농구 도쿄올림픽 1차 예선을 2021년 5월 26일부터 30일까지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도쿄올림픽 1차 예선은 지난 3월 18부터 22일까지 인도 벵갈루루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무기한 연기됐다.

도쿄올림픽도 2021년으로 개최가 미뤄졌다. FIBA는 이를 반영해 새로운 예선 일정과 개최지를 정했다.

3대3 농구는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치러지며 남녀 8개 팀씩 참가한다. 지난해 11월 1일 FIBA 3대3 농구 세계랭킹에 따라 남자부에서는 세르비아, 러시아, 중국과 개최국 일본의 출전이 확정됐다. 여자부에서는 러시아, 중국, 몽골, 루마니아가 도쿄행 티켓을 잡았다.

1차 예선을 통해 남녀부 3개 팀씩에 추가로 도쿄올림픽 출전권이 돌아간다. 남자부만 예선에 참여하는 한국은 미국, 리투아니아, 벨기에, 뉴질랜드와 함께 B조에 속했다. 1차 예선에서 3위 안에 들지 못한 팀들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릴 2차 예선에서 마지막 남은 한 장의 출전권을 놓고 경쟁한다.

컴투스 KOREA 3X3 프리미어리그 2020 7라운드 아프리카 프릭스와 한솔레미콘의 경기가 13일 오후 경기도 고양 스타필드 특설코트에서 열렸다. 한솔레미콘 전태풍이 아프리카 프릭스 노승준을 제치며 미들슛을 시도하고 있다. 고양=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0.6.13/[스포츠조선 김 용 기자] 최종 우승의 영광은 어느 팀에게 돌아갈까.

국내 최대 3대3 농구 축제, ‘컴투스 KOREA 3X3 프리미어리그 2020’ 플레이오프 라운드가 27일 경기도 고양 스타필드 스포츠몬스터 특설 코트에서 개최된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한 프리미어리그는 코로나19라는 악재를 뚫고 정규리그 7라운드를 무탈히 마쳤다. 무관중으로 경기가 열렸지만, 참가한 6개팀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코트를 가득 채웠다.

치열한 경쟁 끝에 정규리그 순위가 정해졌다. 아프리카 프릭스가 극적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위 한솔레미콘, 3위 데상트 범퍼스, 4위 한울건설, 5위 박카스, 6위 스코어센터로 순위가 정해졌다.

정규리그도 의미가 있지만, 결국 마지막에 웃는 팀이 진짜 승자가 된다. 플레이오프 라운드에서 우승해야 최종 우승 상금 1200만원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1위 아프리카와 2위 한솔레미콘은 4강에 직행한다. 4위 한울건설-5위 박카스전 승자가 4강에서 아프리카와 붙는다. 반대쪽에서는 3위 데상트-6위 스코어센터전 승리팀이 한솔레미콘을 만난다.

객관적 전력의 차이는 있지만, 3대3 농구는 경기 당일 선수들의 컨디션과 분위기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 때문에 최종 우승팀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10분 한 경기에도 체력 소모가 심한 3대3 농구 특성상 4강에 직행한 팀들이 조금 더 유리할 수는 있다.

1위 아프리카는 한준혁과 김동우 두 원투펀치의 위력이 좋고 팀 조직력이 우수해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2위 한솔레미콘은 전태풍 이동준 등 남자프로농구 무대를 수놓았던 스타들의 능력치가 매우 좋은 팀이다. 올해 3대3 농구에 데뷔한 전태풍이 플레이오프 라운드를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하위팀들의 반란도 예상해볼 수 있다. 3위 데상트는 7라운드 마지막까지 우승 경쟁을 벌인 강호다. 장동영의 득점력이 좋다. 목포대 시절 농구대잔치에서 한 경기 67득점 기록을 세웠던 선수다. 4위 한울건설의 경우 전 국가대표 출신 방성윤의 3점포가 터지면 어느 팀도 이길 수 있다. 상대적으로 약한 수비를 보완해야 한다. 투지가 좋은 박카스는 7라운드에서 아프리카를 눌렀다. 자칫하면 아프리카의 정규리그 우승 잔치가 망칠 뻔 했다. 스코어센터 역시 7라운드에서 한울건설을 이겼던 팀이기에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함지훈(198cm, F)이 두 가지 기록을 동시에 달성할까?

함지훈은 2007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0순위로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에 입단했다. 데뷔 시즌부터 팀의 주축 빅맨이 됐다. 2007~2008 시즌 38경기에 나서 평균 33분 21초를 뛰었고, 16.1점 5.8리바운드 3.2어시스트에 1.3개의 스틸을 기록했다.

2009~2010 시즌에 정점의 기량을 보였다. 정규리그 52경기에 나서 평균 35분 37초를 소화했고, 14.8점 6.9리바운드 4.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평균 37분 51초 동안 16.0점 6.3리바운드 5.8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통합 우승을 경험했고, 통합 MVP도 받았다.

그 후에도 양동근(은퇴)과 함께 모비스의 주축 자원으로 활약했다. 2012~2013 시즌부터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우승을 달성했다. ‘KBL 최초 PO 3연패’의 일원이었다. 그리고 현대모비스로 바꾼 2018~2019 시즌에도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현대모비스와 함지훈 모두 2019~2020 시즌에 이렇다 할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현대모비스는 8위(18승 24패)로 시즌을 마쳤고, 함지훈은 8.4점 5.4리바운드 4.3어시스트로 2019~2020 시즌을 종료했다.

그리고 현대모비스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현대모비스의 심장인 양동근이 은퇴했고, 장재석(204cm, C)-김민구(190cm, G)-기승호(195cm, F)-이현민(174cm, G) 등 외부 FA(자유계약) 자원들이이 대거 가세했다.

함지훈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현대모비스와 유재학 감독의 성향을 가장 많이 아는 선수이기 때문. 코트에서는 동 포지션인 장재석과 이종현(203cm, C)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함지훈은 KBL에서 여전히 경쟁력을 지닌 빅맨이다. 포스트업을 이용한 득점과 패싱 센스를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KBL 역대 선수 중 개인 최다 득점 17위(6,262점)와 KBL 역대 선수 중 개인 최다 어시스트 11위(2,199개)를 기록하고 있는 게 그 증거.

역대 득점 10위인 우지원(7,348점)과는 1,086점의 차이가 있고, 역대 어시스트 10위인 강동희 전 감독(2,201개)와는 2개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함지훈이 두 시즌을 넘게 소화한다면, KBL 역대 선수 중 득점 10위와 어시스트 10위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점프볼=이재범 기자] “자유투 쏠 때마다 ‘이거 못 넣으면 엄마가 또 뭐라고 하시겠지’라고 생각하면서(웃음) 이거 하나만큼은 무조건 넣는다는 마음을 갖는다.”

KBL은 2019~2020시즌을 치르며 여러 가지 반등의 가능성을 지켜봤다. 외국선수 출전시간을 60분에서 40분으로 줄이자 젊은 국내선수들이 활약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팬들이 현장에서 더 많은 경기를 지켜볼 수 있도록 주말 경기 비중을 늘리자 관중도 증가했다.

이런 가운데 아쉬운 대목 중 하나는 자유투 성공률. 인기 회복을 위한 다양한 긍정 요인들 속에 부정적인 요소가 바로 저조한 자유투 성공률이었다.

시즌 초반 70%가 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2라운드까지만 해도 69.5%(2035/2929)였던 자유투 성공률이 시즌 중반으로 흘러갈수록 점점 오르기 시작했다. 3라운드 들어 70.5%(3020/4283)로 회복했고, 최종적으로 71.0%(4836/6809로 마무리했다.

2019~2020시즌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시즌이 조기종료 되었지만, 최근 두 시즌의 자유투 성공률 70.3%(6782/9642)와 70.9%(6761/9542)보다 높다.

WKBL은 KBL과 달리 지난 시즌 자유투 성공률 75.3%(1644/2183)를 기록했다. 이는 2011~2012시즌의 75.4%(3012/3994)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단일리그로 치러진 2007~2008시즌 이후 역대 3번째 높은 기록이기도 하다. 1위는 2009~2010시즌의 76.2%(2892/3784)다.

선수들의 자유투 성공률 기록을 살펴볼 때 눈에 띄는 선수 한 명이 있다. 지난 시즌 자유투 성공률 81.2%(18/22)를 기록한 부천 하나원큐의 이하은(182cm, C)이다. 이하은의 81.2%는 자유투 20개 이상 시도한 선수 중 10위이며, 국내선수 센터 중에선 최고 성공률이다. 팀 내에선 신지현의 86.2%(25/29)보다 낮지만, 에이스 강이슬의 81.0%(64/79)보다 높다.

자유투 성공률은 보통 빅맨보다 가드나 포워드가 높은 편이다. 이하은은 자유투가 좋은 이유를 묻자 “엄마의 영향이 크다. 엄마가 ‘농구 선수라면 자유투는 당연히 넣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어릴 때부터 말씀하셨다”며 “제가 학교 다닐 때부터 자유투를 몇 개 안 던졌는데 ‘그게 얼마나 소중한 건데, 프로 와서는 하나 넣고 안 넣고 따라 평균 득점까지 영향을 주는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자산인데 그걸 못 넣는 게 이해를 못하겠다’고 하셨다”고 답했다.

이어 “자유투 쏠 때마다 ‘이거 못 넣으면 엄마가 또 뭐라고 하시겠지’라고 생각하면서(웃음) 이거 하나만큼은 무조건 넣는다는 마음을 갖는다”며 “그게 쌓이고 쌓여서 자유투만큼은 넣으려고 했다. 성공률을 떠나서 신경을 많이 쓰긴 한다”고 덧붙이며 웃었다.

이하은은 지난 시즌 처음으로 평균 10분 이상인 11분 출전했다. 팀에서 가장 많이 주문 받고 있는 건 리바운드다. 리바운드에서 집중력을 발휘해 출전시간을 조금 더 늘린다면 두드러진 자유투 성공률을 더욱 더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루키=이동환 기자] NBA는 1946년 창설된 이후 7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흑백분리정책인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이 여전히 시행 중이었으며 백인들이 흑인을 공개 처형하는 린칭(Lynching)이 북미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때문에 20세기 중후반에 NBA에서 뛰었던 비백인 선수들은 인종차별을 지금보다 더 일상적으로 경험해야 했으며, 그 잔재는 지금까지도 미국 곳곳에 숨어 있다.

끝없는 인종차별 경험으로 인해 마이클 조던은 한 때 자신을 또 다른 의미의 인종차별주의자로 여기기도 했다. 러셀 웨스트브룩은 캐스터, 관중으로부터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지금부터 NBA 역사에서 있었던 인종차별의 역사와 사건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오만한 니그로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재키 로빈슨은 무척 상징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흑인선수였으며 그가 달았던 등번호 42번은 현재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에서 전부 영구결번돼 있다. 사상 첫 흑인 메이저리거가 되어 인종의 벽을 허물기 시작한 로빈슨의 공을 기린 것이다.

그렇다면 NBA의 재키 로빈슨은 누구일까? 누군가는 NBA 역사상 처음으로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흑인 선수인 척 쿠퍼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많은 이들이 이 사람을 NBA의 재키 로빈슨으로 꼽지 않을까 싶다. 바로 빌 러셀이다.

농구인 빌 러셀이 쌓은 업적은 위대함 그 자체다. 1956년부터 1969년까지 13년 동안 그는 보스턴에서 11개의 파이널 우승 반지를 획득했으며 정규시즌 MVP만 5번 수상했다. 리바운드왕도 4차례 등극했다. 러셀은 지금도 NBA 역대 최고 빅맨 논쟁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곤 한다.

1966년부터 1969년까지는 보스턴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했다. 러셀은 NBA 역사상 최초의 흑인 감독이었다. 은퇴 후에는 시애틀, 새크라멘토에서 감독 생활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는 명백한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전설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이 더 있다. 러셀이 흑인으로서 겪은 수많은 인종차별의 경험이다.

선수 시절 러셀은 말 그대로 끔찍한 세상에 살았다. 자신의 귀로 직접 들었던 인종차별적인 별명만 셀 수 없을 정도다. 개코원숭이(baboon), 깜둥이(coon), 니거(Nigger), 초콜릿 보이(Chocolate Boy: 과거 북미에서는 boy라는 단어도 흑인들에게 그 자체로 인종차별적인 뉘앙스를 가졌다.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시절 백인은 흑인 노예를 boy라고 부르고 흑인 노예는 백인을 sir라고 부르던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예 제도가 폐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이 관습은 러셀이 한창 선수 생활을 했던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검은 고릴라(black gorilla) 등이 있었다.

당시 흑인들은 백인들과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이 금지됐는데 러셀 역시 이런 제한된 환경 속에서 선수 생활을 해야 했다. 1961년에는 켄터키 주의 한 식당에서 러셀을 비롯한 보스턴 흑인 선수들이 식사 서빙을 거부당하는 일도 있었다.

보스턴에서 한창 우승 반지를 모으던 시절에는 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러셀의 집에 무단 침입해 침대에 대변을 버리고 러셀의 우승 트로피와 벽 등을 때려 부수는 사건이 벌어진 것. 심지어 국가기관의 불합리한 감시도 감당해야 했다. 당시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냈던 러셀을 FBI는 ‘오만한 니그로(arrogant Negro)’라고 불렀으며, 수시로 러셀을 미행하곤 했다.

하지만 러셀은 결코 주눅 들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 러셀은 오히려 평온하고 당당하게 맞섰다. 러셀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어떤 사람도, 심지어 백인일지라도 너보다 훌륭하지 않다”는 말을 들려주며 자신감을 심어주곤 했다. 이것이 러셀의 사회적 투쟁심에도 불을 지폈다. 러셀은 1979년에 발간한 자서전을 통해 이런 말을 전했다.

“나는 단지 키가 커서 사람들의 눈에 띄고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게 아니었다. 나는 흑인인 동시에 악명 높은 실력을 가진 운동선수였다.” 러셀이 얼마나 자신감 넘치고 꿋꿋한 사람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코멘트다.

러셀뿐만 아니라 당시 NBA에서 뛰었던 모든 흑인 선수들이 차별을 경험하며 커리어를 이어갔다. 리그 시스템부터 문제가 있었다. 1950년부터 NBA에 흑인 선수가 하나 둘 등장하는 상황 속에서 당시 NBA 구단들은 팀당 2명의 흑인 선수만 보유하자는 모종의 합의를 했다. 흑인 선수가 너무 많으면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구단주들이 우려했던 탓이다. 훗날 이 숫자는 3명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과거 NBA에서는 ‘당연히 그래도 되는 것처럼’ 벌어졌다. 1964년 MVP이자 NBA 역사에 손꼽히는 가드인 오스카 로버트슨은 “데뷔 당시 우리 팀엔 나를 포함해 총 3명의 선수가 있었다. 선수 명단이 리포트로 나갈 때면 3명의 흑인 선수 이름 옆에는 별표가 그려져 있곤 했다”라고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뿌리 깊은 코트 안팎의 인종차별은 이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패트릭 유잉과 마이클 조던도 끔찍한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내가 처음으로 인종차별을 경험한 것은 보스턴에 갔을 때였다. 엄청난 인종차별적 행위들이 우리 팀에 가해졌다. 팀 버스는 박살이 났고 타이어엔 아예 구멍이 났다. 말도 안 되는 호칭으로 우리를 불러대기도 했다. 나는 그걸 더 나은 선수가 되려는 원동력으로 삼으려고 했다.” 유잉의 회상이다.

조던은 2014년에 한 인터뷰에서 “한 때는 나 스스로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생각했다”라고 고백했다. 조던이 이런 말을 한 이유는 그가 백인을 무척 싫어했기 때문이다.

조던이 태어나고 자란 노스캐롤라이나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지역이었고(노스캐롤라이나는 미국 남부에 위치해 있다. 19세기 노예제도의 영향으로 남부 지역은 지금도 흑인 문제에 대해 보수적이며 적대적이다.), 이는 백인에 대한 조던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77년 조던은 자신을 ‘니거’라고 부른 여학생에게 탄산음료를 던져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 여학생에게 음료수를 던져버렸었다.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저항했었다. 한 때는 나 스스로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나는 백인들을 싫어했었다.” 조던의 말이다.

천박한 차별주의자들

1990년대 마이클 조던이 스타덤에 오르고 NBA가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후 흑인 선수들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코비 브라이언트, 앨런 아이버슨,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르브론 제임스 등 NBA를 대표하는 흑인 스타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면서 젊은이의 아이돌이 됐다. 흑인 선수들은 코트에서 그 입지가 커지는 정도를 넘어 문화적 아이콘 그 자체가 됐다. 이는 긴 시간 동안 진행된 인종차별 해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지금 NBA는 인종차별과 완전히 무관한 리그가 됐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21세기가 된 후에도 코트 안팎에서 끊임없이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팬, 방송국 캐스트, 단장, 구단주 등 그 주체도 다양했다.

휴스턴의 러셀 웨스트브룩은 현역 선수 중 인종차별 문제에 가장 자주 부딪힌 선수일 것이다.

2018년 4월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오클라호마시티 지역 방송 아나운서인 브라이언 데이비스는 경기 중계 도중 웨스트브룩이 좋은 패스로 동료의 득점을 돕자 “웨스트브룩이 시시한 마인드를 버렸군요!(Westbrook is out of his cotton-picking mind!)”라고 외쳤다.

문제는 ‘cotton-picking’이라는 표현이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담겨 있는 관용어였다는 점. ‘cotton’은 목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cotton-picking’은 ‘목화를 줍는’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20세이 미국 남부 농장에서 노예들이 주로 했던 일이 밭에서 목화를 줍는 것이었다. 당시 흑인 노예들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 때문에 ‘cotton-picking’은 지금도 ‘천박한’, ‘더러운’이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즉 이 표현은 흑인선수들의 플레이를 설명할 때 결코 써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방송국은 해당 아나운서에 1경기 중계 정지 징계를 내렸다. 논란의 중심에 선 브라이언 데이비스는 “웨스트브룩과 팬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그런 결과를 불러온 제 판단이 정말 미숙했다”라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웨스트브룩 입장에서는 불쾌감이 클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2019년 12월에는 유타에 위치한 비빈트 스마트 홈 아레나의 한 팬이 웨스트브룩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퍼붓는 일도 있었다. 그 팬은 경기 전 웨스트브룩을 “보이(boy)”라고 부른 데 이어, 경기 중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웨스트브룩에게 “과거에 너희들이 그랬던 것처럼 무릎을 꿇어라(get down on your knees like you used to)”라고 외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말을 들은 웨스트브룩이 자리에서 일어나 팬과 언쟁을 벌이며 큰 분노를 표출했고, 이 영상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논란이 매우 커졌다.

이 사건은 오히려 도노반 미첼을 비롯한 유타의 흑인 선수들과 유타 구단에 더 큰 상처와 충격을 줬다. 백인 인구 비율이 높은 솔트레이크 시티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졌다.

이에 유타의 가일 밀러 구단주는 곧바로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다. 다음 경기가 열리던 날 경기 시작 전 코트로 직접 나와 웨스트브룩에게 사과와 지지를 보내고 인종차별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밀러 구단주는 “경기장을 방문한 상대 팀 선수뿐만 아니라 구단주인 저와 우리 가족, 유타 구단, 솔트레이트시티 지역 사회, 우리 유타 선수들과 팬들을 모두 욕보이게 만들었던 그 팬의 발언에 큰 실망을 느꼈다”며 “이런 일은 다시는 벌어져서는 안 된다. 솔트레이티시티는 결코 인종차별적인 공동체가 아니다”라고 직접 이야기했다. 웨스트브룩에게 모욕적인 말을 쏟아낸 해당 팬은 이후 평생 동안 비빈트 스마트 홈 아레나 방문이 금지됐다.

NBA에서 흑인 선수들과 함께 지내는 백인 동료 선수, 감독들은 입을 모아 지금도 흑인 선수들이 코트 안팎에서 많은 인종차별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카일 코버, J.J. 레딕, 스티브 커, 그렉 포포비치는 이와 관련해 목소리를 높인 적이 있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골든스테이트의 스티브 커 감독은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똑같이 올바른 말을 해도 백인이 아닌 흑인 선수들이 말하면 그 내용이 대중들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샌안토니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대부분의 백인들은 미국에 있는 흑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스트레스를 이해하지 못한다”라며 미국에 인종차별 문제가 명백히 존재하며 이는 ‘껄끄럽고 불편한 진실(the elephant in the room)’이라고 했다. 포포비치는 함께 지내는 흑인 코치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갑자기 경찰을 만났을 때 행동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을 본 적도 있다고 했다.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백인들은 마음이 편할 수밖에 없다.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흑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스트레스와 감정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은 백인들에게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경찰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해 가르쳐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주변의 흑인 지인들은 그래야만 했다. 이런 상황 자체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포포비치의 말이다.

도널드 추방과 NBA의 전진

요즘은 ‘도널드’하면 많은 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떠올리지만, 한 때 NBA 팬들은 전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 ‘도널드’는 바로 도널드 스털링 구단주였다.

법조인, 사업가 출신의 스털링은 1981년 1,250만 달러에 재정난에 시달리던 샌디에이고 클리퍼스를 인수했다. 인수 후 스털링은 클리퍼스를 NBA 컨텐더 팀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3년 후 클리퍼스는 LA로 연고를 준비하며 새 시대를 준비했지만 결과는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인수 당시의 호언장담과 달리 스털링은 소극적인 투자로 클리퍼스 구단 운영에 오히려 악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클리퍼스는 최악의 이미지를 가진 만년 하위 팀으로 자리 잡고 말았다.

2009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블레이크 그리핀을 지명한 후 클리퍼스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이후 크리스 폴을 트레이드로 영입한 클리퍼스는 서부지구를 대표하는 강호로 올라선다. 도널드 스털링이 구단주가 된 이래 클리퍼스가 이렇게 강한 팀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2014년 4월 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터진다. 스털링과 여자친구의 언쟁 내용이 녹취된 음성 파일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이다.

그 내용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다음은 녹취록에 담긴 스털링의 발언들이다.

“인스타그램에 흑인들이랑 같이 걸어가는 사진 좀 올리지마.”

“네가 흑인들이랑 잘 지낸다는 걸 여기저기 광고하고 다니는 게 나한텐 정말 신경 쓰여”

“(클리퍼스 선수들은) 내가 먹이고 입히고 지원해줘. 걔들에게 옷과 차와 집을 주는 것도 결국 나야. 내가 아니면 그걸 누가 줘? 다른 사람이 걔들한테 그렇게 해줘? 농구 경기는 누구 덕분에 할 수 있는 거지? 나 덕분이겠어, 아니면 걔들 덕분이겠어?”

스털링의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리그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다. 선수들은 스털링의 발언에 매우 큰 불쾌감을 느꼈고, 당시 서로 플레이오프 시리즈를 치르고 있던 클리퍼스와 골든스테이트의 몇몇 선수들은 이 사건으로 경기 보이콧을 고민하기도 했다.

다음 경기에서 클리퍼스 선수들은 구단 셔츠를 뒤집어서 입고 나타나며 스털링에 대한 저항의 자세를 드러냈다. 상대 팀이었던 골든스테이트 선수들도 클리퍼스 선수의 행동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플레이오프 경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제는 NBA 사무국이 움직일 차례였다.

2014년 2월 1일에 부임한 아담 실버 신임 총재는 부임 후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NBA의 미래를 바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전세계의 이목이 실버 총재에게 향했다. 그리고 실버 총재가 내린 선택은 북미 스포츠 역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철퇴’였다.

실버 총재는 스털링의 발언이 공개된 지 4일 후인 2014년 4월 29일,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선언했다.

“NBA는 음성 분석 결과 언론을 통해 공개된 스털링의 목소리와 과거에 있었던 인터뷰 속 스털링의 목소리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녹취본 속 스털링의 발언은 매우 공격적이고 해로운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도 개인적으로 큰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즉시 도널드 스털링을 클리퍼스 농구단뿐만 아니라 NBA에서 완전히 추방합니다. 앞으로 스털링은 어떠한 NBA 경기나 훈련에 자리할 수 없으며 클리퍼스와 관계된 어떠한 비즈니스 행사와 선수의 결정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NBA 이사회를 비롯한 어떠한 행사에도 참석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저는 NBA 규정에서 허용되는 최대 벌금인 250만 달러를 스털링에게 부과합니다. 또한 스털링이 클리퍼스에서 손을 떼고 구단을 강제 매각하게 만들도록 NBA 이사회가 움직여줄 것을 강력히 요청합니다. 저 역시 제가 가진 권한을 최대한 이용해 이 일을 돕겠습니다.”

결국 스털링은 NBA에서 쫓겨났다. 이 사건으로 아담 실버 총재는 선수들의 확실한 신뢰를 얻었다. NBA라는 리그가 한 단계 더 진보하는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NBA는 사회 곳곳에 만연한 인종차별 문제를 힘이 닿는 범위 안에서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가장 최근에 NBA가 벌인 작업은 바로 구단주를 의미하는 단어를 ‘오너(owner)’에서 ‘가버너(governer)’로 교체한 것이었다. 주인, 소유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인 ‘오너’는 과거 흑인 노예들이 일했던 농장의 백인 주인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했다. 도널드 스털링처럼 구시대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구단주가 등장했던 NBA 입장에서는 ‘오너’를 ‘가버너’로 바꾸는 운동은 꽤 중요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담 실버 총재는 2019년 인터뷰에서 이 변화를 거론하며 “(구단주를 의미하는) 단어에 대해 과잉 반응을 하고 싶지는 않다. 결국 사람들은 두 단어를 혼용할 것이다. 하지만 NBA는 ‘오너’라는 단어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고 있는 중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단어에 너무 과잉 반응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저는 그 단어에 꽤 민감한 편이다. ‘오너’라는 표현을 팀들이 피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NBA는 ‘가버너’라는 단어에 집착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드레이먼드 그린은 HBO의 ‘더 샵’이라는 토크쇼 방송에서 NBA의 움직임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린은 “구단주를 주인을 뜻하는 ‘오너’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CEO나 회장(Chairman)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농구 팀은 선수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NBA의 뜻에 발맞춰 몇몇 구단은 이미 변화를 시작했다. 현재 필라델피아 구단은 구단주를 의미하는 공식 표현으로 ‘오너’가 아닌 관리 파트너(Managing Partner)를 쓰고 있다. 클리퍼스도 스티브 발머 구단주를 ‘오너’ 대신 회장(Chairman)이라고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있다.

프로 1부승격 신슈와 입단계약 “NBA 서머리그 참가 협력 약속”

“일본에서 뛰더라도 미국 진출의 꿈은 현재진행형이에요. 구단도 비시즌에 NBA(미국프로농구) 서머리그 진출 등을 돕겠다고 했어요.”

청소년 연령대별 대표를 거쳐 농구 본토인 미국으로 건너간 양재민(21·200cm·사진)이 전격적으로 일본프로농구 B리그에 진출했다. 전미전문대학체육협회(NJCAA) 리그에서 2년간 활약한 뒤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소속 대학 진입을 노렸던 양재민은 일본이라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B리그 2부에서 올해 1부로 승격한 신슈 브레이브 워리워스(신슈)는 25일 양재민과의 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연고지는 일본 나가노다. 구단은 계약 조건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양재민은 2년 계약이라고 밝혔다. 신슈에 따르면 양재민은 아시아쿼터제로 B리그에 진출한 첫 한국 국적 선수다.

니오쇼 커뮤니티 칼리지 소속으로 3월 NJCAA리그 8강 토너먼트를 마칠 때까지만 해도 양재민은 NCAA 1부 대학 편입이 거의 확정적이었다. 소속 콘퍼런스에서 톱10 선수로 뽑히면서 1, 2부 합쳐 30여 개 대학에서 입학 제안을 받았다. 양재민은 “1부에선 6개 팀 정도가 꾸준하게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대학들마다 계획된 학사 운영에 차질이 생겼다. 양재민은 “5월 31일까지 학교가 결정돼야 하는데 8월까지 등록이 미뤄졌다. 8월까지 기다려도 NCAA리그가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어 무작정 기다려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 시점에 일본과 호주 프로 팀에서 제안이 왔다”고 했다.

양재민은 “일본 B리그 소속 선수들이 비시즌에 NBA 서머리그에 많이 나간다. 팀도 미국 등 해외 경험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더라. ‘아메리칸드림’을 위한 디딤돌로 보면 된다”며 의지를 보였다. 10월 개막하는 B리그는 1부에 18개 팀이 속해 있다. 국내에서 개인 훈련 중인 양재민은 조만간 소속 팀에 합류할 예정이다.

모비스 숀 롱, 호주리그 에이스급
KGC 클락도 NBA 261경기 뛰어
다른 팀들도 느긋하게 대어 물색

새 시즌 KBL리그는 거물들의 경연장이 될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전 세계 주요 스포츠리그가 중단된 가운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식된 한국 스포츠리그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각 팀의 외국인 선수 선발 작업이 마무리 단계인 KBL리그는 예년보다 화려한 경력의 선수들이 속속 사인을 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새 외국인 선수 숀 롱(27)을 영입하며 화제를 모았다. 208cm의 장신에 윙스팬이 216cm에 달하는 정통 센터인 롱은 지난 시즌 호주프로농구리그(NBL) 멜버른 소속으로 평균 26.6분을 뛰며 18.2점, 9.4리바운드, 1.2블록을 기록했다. 리바운드는 리그 전체 1위였고 득점력은 NBL에서 활약한 빅맨 중 가장 뛰어났다. 3점 능력에 수비 이해도도 좋은 롱을 최근 몇 년 동안 몇몇 구단이 영입을 시도했지만 아직 젊은 데다 몸값이 높아 번번이 무산됐다.

KGC가 영입한 얼 클락(32·208cm)도 농구팬들에게는 낯익은 얼굴이다. 2009년 NBA 신인드래프트에서 14순위로 피닉스에 지명된 클락은 7시즌 동안 261경기에 출전했다. 2012∼2013시즌에는 LA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고 코비 브라이언트와 한 코트에 서기도 했다. 지난 시즌 스페인 1부 리그 산 파블로에서 평균 12.2점, 6.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세계 각국 리그가 중단된 뒤 재개 일정조차 못 잡는 상황에서 야구 축구 등 주요 스포츠리그를 안정적으로 치르고 있는 한국이 각광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몸값 상한선 등이 있지만 코로나19로 시즌을 일찍 마쳤어도 각 구단이 외국인들에게 계약대로 연봉을 모두 지급한 부분도 선수들에게 호감을 주고 있다.

아직 외국인 구성을 완료하지 못한 몇몇 구단은 아예 ‘눈높이’를 높이고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기다릴수록 오히려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지난 시즌 프로농구는 자밀 워니(SK), 캐디 라렌(LG), 치나누 오누아쿠(DB) 등 수준급 빅맨들이 팬들을 흐뭇하게 했다. 새 시즌은 수준 높은 새 얼굴들과 구관들의 치열한 자존심 대결도 흥미롭게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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